남녀상열지사 완벽 총정리 — 뜻·작품·고려가요 사례까지 한눈에

 

남녀상열지사

 

고려시대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는 표현을 반드시 마주치게 됩니다. 교과서나 시험 문제에 자주 등장하는 이 개념,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글"이라고만 알고 넘어가면 중요한 문학사적 맥락을 놓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남녀상열지사의 정확한 뜻과 한자 풀이부터, 쌍화점·청산별곡·서경별곡·정읍사 등 대표 작품 분석, 그리고 조선 시대 지배층이 이 용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까지 깊이 있게 다룹니다. 10년 이상 고전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해온 전문가의 시각으로, 단편적인 암기가 아닌 진짜 이해를 돕겠습니다.


남녀상열지사란 무엇인가? 정확한 뜻과 한자 풀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는 "남녀가 서로 기뻐하고 즐기는 내용을 담은 노래(사)"를 뜻하는 한자어로, 조선 시대 성리학적 관점에서 고려가요의 일부 작품을 비판·규정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남녀 간의 사랑과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노래에 붙여진 일종의 낙인(stigma) 성격의 분류어였습니다. 단순한 문학 장르 명칭이 아니라, 당시 지배 이념과 검열 의식이 담긴 정치적 용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한자 자세히 풀기 — 男女相悅之詞

남녀상열지사를 구성하는 한자 하나하나를 분해하면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한자
남자, 사내
녀(여) 여자, 여성
서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의 (관형격 조사)
말, 노래, 가사
 

여기서 특히 '悅(열)'이라는 글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한 사랑(愛, 애)이나 그리움(思, 사)이 아니라 육체적·감각적 기쁨과 쾌락을 내포한 단어입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 글자를 선택함으로써 해당 작품들이 음란하거나 도덕적으로 불순하다는 뉘앙스를 의도적으로 심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학 비평이 아니라 사회적 통제의 도구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실제로 『악학궤범(樂學軌範)』이나 『악장가사(樂章歌詞)』에 해당 작품들이 수록될 때, 일부 내용이 삭제되거나 수정된 흔적이 발견됩니다. 이처럼 남녀상열지사라는 레이블은 단순한 분류가 아닌, 문화 권력의 행사였음을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남녀상열지사는 누가, 왜 만든 용어인가?

이 용어는 고려 시대 사람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조선 초기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사대부 관료들이 고려의 속악(俗樂)과 가요를 검토하면서 '음사(淫詞)', 즉 음란한 노래로 분류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입니다. 특히 조선 태종·세종 시기 예악(禮樂) 정비 과정에서 궁중에서 연행되던 고려가요들을 심의할 때 이 기준이 적극 적용되었습니다.

조선의 관료들이 이 용어를 사용한 맥락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조선은 건국 이념으로 성리학(주자학)을 채택했고, 예(禮)와 의(義)를 강조하는 유교적 질서를 사회 전반에 이식하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 시대의 자유분방한 남녀 감정 표현, 특히 여성의 목소리로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 가요들은 새로운 이념 질서와 충돌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을 '남녀상열지사'로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문학적 판단이 아니라, 이전 왕조의 문화를 부정하고 새 이념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실제로 세종실록과 성종 때의 『성종실록』에는 신하들이 이러한 노래들을 궁중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청하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고려가요와 남녀상열지사의 관계 — 모든 고려가요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오해를 바로잡겠습니다. 남녀상열지사는 고려가요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고려가요(고려속요) 중 남녀 간의 애정이나 이별, 욕망을 담은 작품들에 한정되어 사용된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로 해석되는 작품이나 자연 예찬, 민간의 소박한 삶을 담은 노래들은 남녀상열지사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된 작품들은 쌍화점(雙花店),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이상곡(履霜曲) 등입니다. 반면 청산별곡(靑山別曲)이나 서경별곡(西京別曲)은 애정 요소를 담고 있지만, 남녀상열지사로 명시적으로 분류된 기록이 쌍화점 등에 비해 덜 직접적입니다. 이처럼 남녀상열지사의 경계는 당시 심의관의 판단과 시각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에도 학계에서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남녀상열지사 대표 작품 심층 분석 — 쌍화점, 만전춘, 이상곡

남녀상열지사로 가장 명확하게 지목된 작품은 쌍화점(雙花店),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이상곡(履霜曲)입니다. 이 세 작품은 조선 시대 문헌에서 직접적으로 "음사(淫詞)" 또는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그 내용도 다른 고려가요에 비해 성적인 욕망과 쾌락을 훨씬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쌍화점(雙花店) — 가장 대표적인 남녀상열지사

쌍화점은 고려 충렬왕 때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총 4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연은 여성 화자가 특정 장소(만두 가게, 삼장사, 우물, 술집)를 방문했다가 그곳의 남성(회회아비, 절의 사주, 용, 술집 아비)과 성적 관계를 맺게 된다는 내용을 반복적 구조로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애정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 구조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회회아비(回回아비)'는 고려 시대 원나라의 지배하에 들어온 이슬람 상인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쌍화점은 단순한 음란시가 아니라 원나라 지배와 외세의 침투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식과 풍자를 담은 정치적 텍스트로 읽힐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의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사회사적 독해를 지지하는 논문을 다수 발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쌍화점의 반복 구조는 단순한 형식적 특징이 아닙니다. 각 연에서 "그 잔 대를 거러 두고 나를 해할 이 없으리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데, 이는 당대 민중이 갖고 있던 사회적 피해의식과 자기 방어 심리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쌍화점을 남녀상열지사라는 단일한 프레임으로만 보는 것은 이 작품의 복잡한 층위를 단순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구분 내용
창작 시기 고려 충렬왕 대 (13세기 말 추정)
수록 문헌 악장가사(樂章歌詞)
화자 여성 (1인칭)
주요 등장 공간 쌍화점(만두 가게), 삼장사, 우물가, 술집
남녀상열지사 지목 근거 성적 만남의 반복적 묘사
현대적 재해석 원나라 지배에 대한 풍자, 민중 저항의식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 고려 가요 중 가장 노골적인 애정 표현

만전춘별사는 고려 시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노래한 작품입니다. "아소 님하 원디 평생에 여힐 와 있고이다"라는 구절로 유명하며, 이별의 슬픔과 함께 임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을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얼어 죽어도 임과 함께 자고 싶다"는 내용은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대표적인 음사(淫詞)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보면 만전춘별사는 단순한 성적 묘사를 넘어 사랑의 절박함과 순수함을 표현한 서정시로 해석됩니다. 임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 이별의 고통, 재회의 기쁨이 생생한 이미지와 함께 표현되어 있어 고려 시대 사람들의 감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만전춘별사가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되어 규제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조선 시대에도 이 작품의 문학적·음악적 가치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상곡(履霜曲) — 비유와 감각적 이미지의 정수

이상곡은 "서리를 밟으며"라는 제목처럼, 서리와 얼음이라는 자연 이미지를 통해 사랑의 감정과 성적 욕망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상곡은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감각적 비유를 통해 남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어, 세 작품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표현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의미가 성적인 내용임을 당시 사대부들도 충분히 인식했고, 따라서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이상곡이 현재 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남녀상열지사의 예시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한국 고전시가에서 비유와 상징을 통한 에로티시즘의 표현이 얼마나 세련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동아시아 문학 전통과의 비교 연구에서도 자주 인용됩니다. 중국의 시경(詩經)에 수록된 민간 가요들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남녀의 감정을 표현했으며, 이는 동아시아 전반의 고대 서정시 전통과 고려가요가 공통된 맥락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청산별곡과 서경별곡은 남녀상열지사인가? — 논쟁과 재해석

청산별곡(靑山別曲)과 서경별곡(西京別曲)은 애정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쌍화점이나 만전춘별사처럼 명시적으로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된 기록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두 작품은 이별의 정서, 현실 도피, 삶의 고달픔 등 복합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 단순히 남녀상열지사로만 규정하기에는 훨씬 풍부한 문학적 층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산별곡(靑山別曲) — 이별인가, 현실 도피인가

청산별곡은 고려 시대 민중의 삶의 고통과 현실 도피 의식을 노래한 작품으로,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유명한 첫 구절로 시작합니다. 청산별곡이 남녀상열지사와 연결되는 지점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얄리얄리 얄랑셩"이라는 후렴구와 함께 나오는 이별과 그리움의 정서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가다가 가다가 드러라 에졍지 가다가 드러라"라는 구절을 이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해석하며 남녀상열지사의 요소를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청산별곡을 남녀상열지사로만 읽는 것은 이 작품의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현대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청산별곡을 고려 말 무신 정권과 몽골 침입이라는 역사적 격변 속에서 고통받던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사회시로 해석합니다. 청산과 바다로의 도피 의식, "우러라 우러라 새여"라는 절규는 사랑의 고통이 아닌 역사적 고난에 대한 반응으로 읽히며, 이것이 청산별곡이 단순한 남녀상열지사를 넘어 고려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서경별곡(西京別曲) — 여성의 목소리로 이별을 거부하다

서경별곡은 평양(서경)을 떠나려는 임을 붙잡으려는 여성의 감정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서경별곡이 남녀상열지사의 맥락에서 논의되는 이유는, 여성 화자가 임에 대한 사랑과 이별 거부 의지를 매우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스리 바회예 디신들 / 긴힛돌 그츠리잇가 / 즈믄 해를 외오곰 녀신들 / 신(信)잇돌 그츠리잇가"라는 구절은 비록 이별하더라도 사랑과 신의를 잃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현하고 있어, 단순한 성적 묘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서경별곡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여성 화자의 주체성입니다. 이 작품의 여성 화자는 임의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임에게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는 성리학적 이념에서 강조하는 순종적이고 정적인 여성상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바로 이 점이 조선의 사대부들이 이 작품을 불편하게 여긴 진짜 이유일 수 있습니다. 서경별곡을 남녀상열지사의 관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결국 젠더(gender) 정치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읍사(井邑詞) — 남녀상열지사와는 다른 결

정읍사는 백제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행상을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정읍사는 고려 시대까지 이어진 작품이지만,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남녀 간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기보다는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순수한 염려와 기다림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라는 후렴구와 함께 달에게 남편의 안전을 빌고 있는 정읍사는, 오히려 조선의 성리학적 관점에서도 정숙한 아내의 덕목을 표현한 작품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정읍사와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된 작품들을 비교하면, 조선 시대 검열의 기준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핵심 기준은 성적 욕망의 표현 여부와 여성의 능동적 주체성 여부였습니다. 남편을 걱정하며 달에게 기도하는 정읍사의 여성은 수동적이고 정숙한 존재로 그려지지만, 쌍화점이나 만전춘별사의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직접 표현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이 차이가 남녀상열지사 분류의 핵심적인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녀상열지사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과 문화 권력의 문제

남녀상열지사는 단순한 문학 용어가 아니라, 왕조 교체기에 새로운 이념 권력이 이전 문화를 어떻게 통제하고 재편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이 용어의 탄생과 적용 과정을 분석하면, 문화 검열, 젠더 정치, 이념 통제의 문제가 오늘날과도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 예악 정비와 고려가요 검열

조선이 건국된 이후 새 왕조는 음악과 예식(禮式)을 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태종과 세종 시기에 진행된 예악 정비는 단순히 음악을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전 왕조(고려)의 문화적 유산을 성리학 이념에 맞게 선별·재구성하는 정치적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가요들은 궁중 연향(宴享)에서 연행되던 음악으로서의 지위와 성리학적 도덕 규범 사이의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세종 시기에는 신하들이 여러 차례 고려가요의 음사적 내용을 문제 삼으며 폐지를 주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이를 단순히 폐지하기보다는 문학·음악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일정한 통제를 가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작품은 삭제되거나 수정된 형태로 『악학궤범』과 『악장가사』에 수록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원래 가사보다 성적 표현이 완화된 형태로 텍스트가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는 원본 복원 연구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녀상열지사 비판의 이면 — 성리학 이념과 젠더 통제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된 작품들의 공통점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성적 묘사가 있다는 것 이상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여성 화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여성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그려진다는 점이 공통적입니다. 이는 성리학적 젠더 이념, 즉 여성은 순종적이고 정숙해야 한다는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연구자 이혜순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 시대 남녀상열지사 비판은 여성의 욕망 표현을 억압하고 이를 '음란함'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성리학적 젠더 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남녀상열지사 비판은 문학 검열인 동시에 젠더 통제였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문학 비평과도 연결되는 주제로, 고려가요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독(再讀)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오늘날 남녀상열지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 재평가의 필요성

현대의 고전문학 연구는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된 작품들을 조선 시대 사대부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 작품들은 고려 시대 민중의 생동감 있는 삶과 감정, 사회적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문학 유산으로, 오히려 한국 문학사에서 귀중한 보고(寶庫)로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국문학 교육에서는 이 작품들의 문학적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며, 남녀상열지사라는 용어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작품들이 조선 시대의 강력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이 노래들이 단순히 지배층의 연향 음악으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수백 년의 검열과 배제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해지는 쌍화점, 만전춘별사, 이상곡 등은 그 자체로 고려 문화의 저항성과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들을 남녀상열지사라는 부정적 프레임에서 해방시켜 제대로 읽는 것이야말로, 고려 시대 민중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남녀상열지사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1. 남녀상열지사의 정확한 뜻은 무엇인가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는 "남녀가 서로 기뻐하고 즐기는 내용을 담은 노래"라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 성리학적 관점에서 고려가요의 일부 작품을 음란하거나 도덕적으로 불순하다고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로, 단순한 문학 장르 명칭이 아닌 정치적·이념적 낙인의 성격을 가집니다. 특히 '悅(열)'이라는 한자가 육체적·감각적 쾌락을 내포하고 있어, 이 표현 자체에 사대부들의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Q2.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작품은 무엇인가요?

조선 시대 문헌에서 남녀상열지사 또는 음사(淫詞)로 명시적으로 지목된 대표 작품은 쌍화점(雙花店),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이상곡(履霜曲)입니다. 이 세 작품은 모두 여성 화자가 남성에 대한 욕망과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성리학적 도덕 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서경별곡과 청산별곡도 애정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위 세 작품에 비해 명시적인 남녀상열지사 지목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Q3. 청산별곡과 서경별곡도 남녀상열지사인가요?

청산별곡과 서경별곡은 애정의 요소를 담고 있지만, 쌍화점이나 만전춘별사처럼 조선 시대에 명시적으로 음사(淫詞)로 지목된 기록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청산별곡은 이별과 현실 도피를 주제로 하여 민중의 사회적 고통을 담은 작품으로 주로 해석되며, 서경별곡은 이별에 저항하는 여성의 주체적 감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현대 국문학 연구에서는 이 두 작품을 남녀상열지사라는 단일한 프레임으로 규정하기보다 훨씬 복합적인 주제를 가진 문학으로 분석합니다.

Q4. 조선 시대에 남녀상열지사라는 이유로 고려가요가 실제로 금지되었나요?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궁중 연향(宴享)에서의 연행이 제한되거나 일부 내용이 삭제·수정된 형태로 전해졌습니다. 세종 시기에 여러 신하들이 폐지를 주청했으나 세종은 문학·음악적 가치를 고려해 완전한 폐지보다는 통제의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 작품들이 『악학궤범』과 『악장가사』에 수록될 때 원본과 다소 다른 형태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견해입니다. 이처럼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된 작품들은 검열과 보존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Q5. 남녀상열지사는 오늘날 어떻게 평가되나요?

오늘날 고전문학 연구에서는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된 작품들을 조선 시대의 부정적 시각 대신, 고려 시대 민중의 생동감 있는 삶과 자유로운 감수성을 담은 귀중한 문학 유산으로 재평가합니다. 특히 여성 화자의 주체적 목소리와 솔직한 감정 표현은 한국 문학사에서 매우 드문 특징으로, 젠더 문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남녀상열지사라는 용어 자체도 조선 성리학의 이념적 산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현대 학계의 주류적 관점입니다.


결론 — 남녀상열지사, 억압된 목소리의 문학사

남녀상열지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용어는 고려 시대 민중 가요의 자유로운 감수성을 조선 성리학의 이념으로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적 낙인이었습니다. 쌍화점, 만전춘별사, 이상곡을 중심으로, 여성의 주체적 목소리와 솔직한 감정 표현을 담은 이 작품들은 음란하다는 이유로 검열을 받았지만, 그 문학적 생명력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청산별곡과 서경별곡, 정읍사와의 비교를 통해 남녀상열지사의 경계와 기준이 실은 이념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문학 연구자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녀상열지사를 단순히 시험에 나오는 개념으로 암기하는 것을 넘어, 이 용어가 탄생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만 이 작품들이 가진 진짜 가치, 즉 고려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오늘날의 독자로서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문학 비평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 말했듯이, "문학은 결코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남녀상열지사를 둘러싼 논쟁은, 문학을 어떤 이념의 잣대로 재단할 때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700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